창의성, 주자에게 묻다 (A Lesson from the 13th Century)

NFS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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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절경을 안고 내려가는 무이구곡에는 주자의 향취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뗏목을 저어주는 뱃사공이 구곡가를 부른다. “구곡에 다다르니 눈앞이 확연히 트이는데/상마(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 뱃사공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세계의 별천지라네.”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희는 이곳에 학당을 짓고 강학을 펼쳤다.

왜 주자인가? 800년 전, 그것도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공자 왈 맹자 왈’ 성리학(Neo-confucianism)이 창의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 성리학을 국기(founding philosophy of Chosun)로 삼아 나라를 세웠을 때야말로 역사상 가장 창의성이 돋보인 시기가 아니었나? 한글이 창제되었고 과학 기술이 발달했으며 또 예악이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주자의 탁월한 제자 이도(세종대왕)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그 원류를 찾아보았다. 주자는 서양의 칸트(Kant)에 종종 비견되리만큼 동양의 전통사상을 집대성한 대학자였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놀랍게도 주희가 살던 마을, 오부리가 옛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 시냇가에는 여인네들이 여전히 빨래를 하고 있었고, 주자가 어릴 때 공부했다는 학당을 지나가니, 사창(社倉)이라는 곳이 나왔다. 사창은 가난한 소작농에게 저리로 곡식 등을 빌려주던 미소금융기관인데 주자가 창안했다. 유누스 총재의 그라민(Gramin) 뱅크보다 팔백 여 년 앞선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가였으며 또한 실천가였다. 과거제도에서 시문학을 폐지하고 대신 사회의 현안들을 시험 문제로 출제하도록 주장했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홍수 및 가뭄에 대비하는 댐을 만드는 등 백성의 삶을 실제적으로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당연히 그는 기득권 층의 미움을 받았다. 학문적 명성으로 왕의 사사 자리까지 올랐으나 직언을 하는 통에 관직이 박탈되고 학당도 폐지되고 금서를 당하는 등 말년을 매우 쓸쓸하게 보냈다 한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자주 거닐었다는 주자항(朱子巷)이라는 골목에 이르렀다. 골목길 저 끝에 그가 서 있는 듯 했다. 마치 오랫동안 내가 오기를 기다린 듯 말이다. 그간 주자와 성리학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 성리학이란 뭐든 ‘마땅히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도덕률을 강요하는, 그래서 지배층의 권력 이데올로기로 전유되었던, 따라서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낡은 사상이라는 오해 말이다. 그런데 이는 성리학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피상적인 이해다.

성리학은 성인을 목표로 삼는 학문이다. 성인이 되는 길은 마음에 갖추어진 자연의 이법인 덕성을 온전히 실현하는데 있으므로 성리학은 마음에 대한 이해를 대단히 중시한다. 마음을 삶의 주인으로 삼아 마음을 닦고 수양을 하는 자기완성의 학문, 곧 수기(修己)의 학문이다. 동양의 마음 ? 心 ? 은 영어로 번역이 잘 되지 않는다. heart, mind, soul, spirit 을 두루 포함하지만 그 어느 한 쪽에도 천착하지 않는 지극히 동태적인 존재가 마음이다. 마음은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주관적이며, 추상적이면서고 동시에 매우 구체적이다. 즉, 理와 氣를 넘나드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이 마음을 살핌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을 파악하려 했다. 몸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인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동양의 현자들은 이미 간파해 내었던 것일까? 서양의 과학적 전통은 몸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밝히려 했다. 그 결과 서양학문은 몸에 관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체성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분열된 자아에서 기계적 자아, 요사이는 인간과 컴퓨터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본다. 인간을 인풋과 프로세싱 그리고 아웃풋으로 모델링 한다. 다니엘 대넛과 같은 현대 철학자가 그렇다.

컴퓨터와 유비되는 인간의 정체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가 인간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하다. 그리고 컴퓨팅 파워는 매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 자체의 효용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왔다. 공장 자동화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 대본에서 작곡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가 활용된 지도 이미 오래다. 단지 효율성의 제고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성까지도 ‘프로그램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마음을 프로그램 할 수 있을까? 많은 컴퓨터 공학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마음을 몸에 한정된 것으로 본다. 즉, ‘내 마음은 내 몸이 작동하는 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 몸이 죽는 순간, 마음도 전원 스위치처럼 꺼져 버린다고 믿는다. 몸에 갇힌 마음이다.

주자를 비롯한 동양의 전통은 마음을 몸에 갇혀 있다고 보지 않았다. 몸은 제 각각이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 그리고 공동선을 향한 인간의 의지를 보고, 마음의 초월적, 보편적인 영역을 인지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理 즉 하늘의 이치에 맞닿아 있고, 그것은 영원무궁 하다고 보았다. 13세기 중국에 살았던 주자의 사상과 행적이 지금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사실, 서양 사람들도 오랫동안 영혼의 존재를 믿어왔다. 단지 학문과 지성이 이를 부인할 뿐이다.)

영원무궁한 마음은 프로그램화 할 수 없다. 프로그램의 대상은 유한한 세계이지 무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원리이기도 하다. 무한으로 열린 창, 곧 마음이야말로 창의성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알고리즘의 원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무한을 프로그램 할 수 없듯이, 우리가 영원무궁한 마음을 지키는 한, 컴퓨터가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영원무궁한 마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창조란, 마치 여자가 아이를 낳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무이계곡의 뱃사공


무이계곡의 절의


주자의 학교


주자항(朱子巷) 주자가 생각에 잠겨 자주 걸었다는 골목길


오부리(五夫里) 입구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주자와 함께 춤을!


A lesson from the 13th century

As long as we have the eternal mind, computers won’t catch up with the creativity of humans.

Dec 12,2014


The legacy of Zhu Xi can still be found in the picturesque Nine Bend Stream on Wuyi Mountain. The boatman sang “The Boat Song of Wuyi’s Nine Bends.”

“Almost reaching the ninth bend, eyes suddenly open,” he sang. “Through mulberry and hemp, rain and dew, a peaceful river is revealed. The fisherman once again seeks the road to Peach Blossom Spring. Besides this there is another realm in the human world.”

Zhu Xi, a Song dynasty neo-Confucian scholar, built a school here where he taught students. Of what relevance is Zhu Xi today?

Many people may wonder if Zhu Xi’s neo-Confucianism has anything to do with creativity. But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built on a founding philosophy of neo-Confucianism, was the period when creativity bloomed the most. The Korean alphabet Hangul was created, science and technology were developing, and arts and music were widely enjoyed by the people. King Sejong, an outstanding student of Zhu Xi, was at the center of the creativity. 

Tracing back the origin of the creativity, Zhu Xi was a great master whose comprehensive study of Eastern philosophy is often compared to Immanuel Kant in Western philosophy. What was Zhu Xi like? The village that Zhu Xi lived in is surprisingly well preserved. Village women still do laundry in a stream, and village granaries can be found near the school in which Zhu Xi studied when he was young. The granaries also functioned as financial institutions from which farmers could borrow grain at low interest rates. That’s what we would call today a microfinance bank for the community that was founded more than 800 years before Muhammad Yunus’ Grameen Bank in Bangladesh. 

In fact, Zhu Xi was a very progressive thinker and activist. He advocated removing poetry and literature from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including questions on current social issues instead. As a government official, he worked on projects that improved the lives of the people, such as building a dam to prevent floods and to reserve water for times of drought. Naturally, he was hated by the establishment. Though he rose in the government with his academic prestige, as seen in his career as the emperor’s tutor on the Confucian classics, his no-nonsense remarks led to a demotion, the shutdown of his academy and the banning of his books in later years. 

I went to the alley in which Zhu Xi often walked, lost in thought. It felt like he was still standing at the end of the alley, waiting for my visit.

A common misunderstanding about Zhu Xi and his neo-Confucianism was the prejudice that his teachings impose certain morals and therefore exploited an ideology for power. Neo-Confucianism had been considered an outdated philosophy whose validity had expired. But that is mere prejudice and a superficial understanding that does not reach the essence of the philosophy.

Neo-Confucianism is the study of trying to become a sage. In order to become a sage, one must completely realize the virtues of nature, and understanding the mind is an important part of the philosophy. As the mind is the very owner of a human’s life, followers of neo-Confucianism were bent on cultivating and training the mind to complete themselves. The Chinese word “Xin” has no direct translation in English. Instead, it includes all the connotations of heart, mind, soul and spirit and is a very dynamic state. It transcends while implicating; it is universal while subjective; and it is abstract and specific at the same time. Therefore, it is both in reality and in spirit. 

Neo-Confucian scholars looked into the mind in order to understand human identity. The sages of the East must have realized that looking into the body would not give a clue to what a human being really is. In the West, scientific tradition attempted to investigate the identity of humanity by studying the human body. As a result, Western civilization accumulated vast knowledge on human anatomy but is still lost in regards to the identity of humanity. Nowadays, humans and computers are on the same page. Modern philosophers like Daniel Dennett analyze a man in terms of input, processing and output.

The coming together of human identity and computers will not stop here. In fact, computers are superior to humans in many ways. Computing power is drastically improving every year. The develop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may threaten the utility of humans. From factory automation to Hollywood script writing to music composition, software has replaced humans in various fields. Simply put, not just efficiency but also human emotions are being programmed.

Can computers program human minds? Many computer scientists may believe so. They think the mind is confined to the body. In other words, the mind exists as long as the body functions. Therefore, the moment the body dies, the mind is switched off. It all depends on what you believe, since no one who has died can testify. In this paradigm of thinking, the mind is trapped in the body.

However, Zhu and other Eastern traditions thought the mind is not restricted to the body. While we all have separate bodies, minds can be linked together, pursue a common good and aspire to universal and transcendental virtues. When the human mind reaches the reasoning of the heavens, it would be eternal. It would be one, and a 13th century Chinese philosopher’s teachings of this lesson still move my heart. In fact, Westerners have also long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souls, but it is denied academically and intellectually.

The eternal mind is not programmable. Only a world with limits can be programmed. That’s the principle of algorithms. Because the mind is a window to eternity, this is where creativity begins. No matter how advanced computers become, eternity cannot be programmed unless the basics of the algorithms change. As long as we have the eternal mind, computers won’t catch up with the creativity of humans. To those with eternal minds, creativity is an utterly natural thing just like a mother giving birth to a baby. 


The author is the director of the Art Center Nabi. Roh Soh-yeong with the statue of Zhu Xi in China.

by Roh Soh-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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