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 블랙 유머로 3차 산업혁명 시대를 풍자하다

NFS
2019-08-02
조회수 12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 대표적인 작가로 흔히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이 거론된다. 물론 그렇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웰의 <1984>가 세상에 나온 해는 각각 1932년과 1949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이 책들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신선하다. 이들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미래의 기술문명이 다다를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를 탁월하게 그려낸 작가가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미국의 전후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다. 

1940년대말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인 수학자 노버트 위너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이렇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무를 맡을 것을 제안했다 .

“우리는 결코 이런 새로운 기술적 발전을 막을 수 없다. 진보는 이 시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돈 으로 움직이는 기술자의 손에 진보를 맡기지 않도록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은 대중이 현재 연구의 방향과 상황을 이해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보네거트는 노버트 위너의 메시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몇 편의 픽션을 통해 그는 기술의 진보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를 날카로우면서도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는 블랙 유머를 통해 풍자한다.

소설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의 인생 이야기부터 하는 편이 좋겠다. 1922년에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난 커트 보네거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MIT 출신의 건축가였던 한마디로 인텔리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형은 과학사에 이름을 새긴 저명한 화학자였으며 커트 보네거트 본인 역시 코넬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촉망받는 과학도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면 그도 과학 기술의 진보에 기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순조로울 것 같던 인생은 예기치 못한 경험들에 의해 크게 방향이 바뀐다. 첫번째는 드레스덴 공습이다. 학업을 중단하고 2차대전에 참전한 보네거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노역 중 몇몇 포로들과 함께 지하 고기창고에 숨어들었다가 갇혀 버린다. 연합군의 공습이 개시된 시각이 바로 그 때로, 차단된 지하 공간에 있었던 까닭에 보네거트 일행은 포화의 공세에도 운좋게 살아남는다.

1945년 2월 13일에서 15일에 걸쳐, 사흘간 연합군이 공중에서 투하한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에 ’엘베 강의 플로렌스’라 불리던 독일의 아름다운 고도 드레스덴은 불의 지옥으로 변했다. 수만명의 시민들은 화염에 갇힌 채 마치 ‘폼페이 최후의 날’의 희생자들처럼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공습이 끝난 후 참혹한 잔해를 하릴없이 보아야만 했던 그는 열성적인 반전주의자요 휴머니즘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드레스덴 공습 때 겪은 일들은 1969년에 발행된 자전적 소설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에서 우회적으로 묘사된다.


런던 테이트 모던 뮤지엄의 카페 한쪽 벽면에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제5도살장>의 한 대목이 프린트되어 있다.


두번째는 제네럴 일렉트릭의 홍보부에서 일한 경험이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온 그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소설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제네럴 일렉트릭에서 테크라이터의 일자리를 얻는다. 업무라고 해야 제품사용설명서를 작성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신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당대 최고의 기술 제국에서 일하면서 그가 꿰뚫어 본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에 대체된다. 그 결과 대다수의 인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기술 진보의 근본 정신인 효율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극소수의 엔지니어와 경영자가 시스템의 최상층에 자리하고 인간 사회의 계급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양극화된다. 쓸모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누가 이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1950년대 이미 생산에 컴퓨터를 도입한 제네럴 일렉트릭의 공장 모습


보네거트는 이 문제를 소설가로서 데뷔작인 장편소설 <Player Piano(한국어 번역판 제목: 자동피아노, 1952년 작)>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자동피아노>의 무대는 제 3차 대전이 끝나고 십 년 정도가 지난 시점의 뉴욕. 전쟁 당시 징병으로 노동력이 유출되자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은 기계가 자동으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애썼고 급기야 성공을 거둔다. “제 1차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가치를 절하시키고 제 2차 산업혁명은 일상적인 정신노동의 가치를 절하시켰다… 제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진정한 고차원의 정신노동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변화를 일컫는다…3차 산업혁명은 한동안 진행되어왔다”는 소설 속 한 대목을 통해 드러나듯이, 단순히 생산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에 있어 기계에 의한 대치 즉 3차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마치 요즘처럼!).

소설에서 묘사된 미래의 뉴욕은 사회의 양극화가 극단적인 나머지 신분에 따른 거주 구역이 정해져 있다. 최고 엘리트인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은 가족과 함께 ‘일리움’이라는 특별 구역에서, 나머지들은 ‘홈스테드’라는 구역에서 거주한다. 일리움 주민은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설계하는 경영자와 보다 생산성이 높은 기계를 개발하는 엔지니어 및 그 가족들로, 이들은 사회의 카스트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생산이 창출하는 이익의 대부분 이들에게 돌아가는데, 이들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인구의 일퍼센트도 안되는 극소수다. 나머지 대부분은 생산성과 효율성에서 자동화, 기계화에 뒤떨어지는 인간들이다. 대부분의 직업에서 기계에게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군대나 재건간척대 둘 중에 하나다. 홈스테드 거주자들의 공식적 명칭은 ’시민’이지만 일리움 사람들은 이들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일리움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엔지니어인 폴 프로테우스 박사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최고의 두뇌를 가진 35살의 남자다. 부와 명예를 손에 쥘 날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던 폴 박사가 우연히 찾아간 홈스테드에서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고 크게 각성하고, 그 원인을 제공한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몇몇 동지들과 함께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악사라는 직업도 기계가 대신하는 그 세상에서는 홈스테드의 허름한 바에서조차 자동피아노, 즉 무인피아노가 음악을 연주한다. 마치 유령이 건반을 두들기듯한 그로테스크한 자동피아노의 연주는 효율성만이 추구해야 마땅할 최고의 가치가 되고 인간성은 소외되어버린 세계에 대한 ‘메타포’이다.


 

<Player Piano> 초판 커버


커트 보네거트는 제네럴 일렉트릭 시절, 공장에서 제품 생산 공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이 소설을 쓸 결심을 했다고 어느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자동피아노>는 모든 것이 작은 상자들(필자 주: 초기의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게끔 하는 일의 의미들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그런 발상은 뭐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짤깍거리는 작은 상자들이 모든 결정을 하게끔 하는 것이 악의적 인 건 아니죠. 그렇지만 직업을 통해 가치를 발견하는 인류에게 있어 이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폴 프로테우스는 과연 혁명에 성공했을까?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99퍼센트의 인류를 구원했을까? 결말이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찾아 읽는 수고를 해야 할 것 같다.

2015년,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을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하려는 공학자들의 시도가 성과를 내면서 지금 우리는 <자동피아노> 속의 세상처럼 세번째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옥스포드의 마이클 오스본과 칼 프레이가 2013년에 발표한 논문(고용의 미래 : 우리의 직업은 컴퓨터화(化)에 얼마나 민감한가)과 같은 해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가 함께 펴낸 책 <기계와의 경쟁>은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가져다줄지 모르는 암울한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강경한 반응부터 시장에 맡기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낙천적인 반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가와 저널리스트들이 나름의 의견들을 일제히 쏟아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1950년대 초에 나온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만큼 이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통찰력은 어쩐지 만나기가 힘들다.



런던에서 열린 퓨처페스트2015에서 자동화에 대체되는 일자리에 현황과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마이클 오스본 교수(옥스포드 마틴 스쿨)


정말로 우리 다음 세대의 대부분이 잉여인간으로 전락해 ‘홈스테드’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기술의 진보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때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