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와 제2의 기계시대

NFS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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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일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많은 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고 해오던 일을 기계에 빼앗기는 과정에서 실제로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 존 스타인벡은 소설 <분노의 포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언어로 세상에 전한다.

1930년대의 미국,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구치던 물질을 향한 인간의 탐욕은 한낮의 이카루스처럼 곤두박칠했다. 대공황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폭탄으로 말미암은 검은 구름은 좀처럼 걷히지 않고 도시를 실업의 중병으로 신음하게 했다. 그렇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클라호마는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 밀려오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구가 원시적인 소규모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첨단과는 거리가 먼 낡은 산업구조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은 도시의 비극도 이들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지는 못했다. 선대가 토착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내쫓고 경작권을 부여받은 개척의 땅에서 오클라호마의 농민들은 온몸으로 땀을 흘려 밭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고 가족을 이루면서 자연이 주는 것만을 정직하게 받으며 살았다. 부자는 못 되지만 굶지는 않았다. 그러던 1936년의 어느날 그들이 의지하던 대자연의 여신은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한 포악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위력을 행사한다.

더스트볼(dust bowl)이라 일컬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먼지폭풍이 오클라호마 일대를 뒤덮어 모든 작물은 말라죽고 비옥한 토지는 양분이 없는 모래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기간에 다시 땅을 이전의 상태로 복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자연 앞에 무기력한 농부들 앞에 나타난 것은 ‘트랙터’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계였다. 농민들에게는 원수 같은 기계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신의 지팡이 같은 기계였다. 오클라호마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농민은 땅의 주인이 아닌 소작농이었고 땅의 주인은 거슬러올라가면 도시의 자본가 즉 은행이었다. 단기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을 달성하기를 원하는 자본가는 사람을 쫒아내고 트랙터를 쓰는데 있어 먼지 한 알만큼의 망설임도 가책도 없었다. 하루 운전수 일당 3달러면 트랙터 한 대가 100명 분의 일을 척척 하는데 굳이 사람을 써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해보라. 이것이야말로 자본가의 미덕이 아닌가?


오클라호마와 텍사스 일대를 집어삼킨 1935~36년의 머니폭풍, 더스트볼 당시의 사진


Dorothea Lange의 사진 Migrant Mother(1936). 대공황 시절의 더스트볼 피난민을 상징한다.


일터이자 삶터에서 쫒겨난 농민들의 눈에 트랙터는 이렇게 묘사된다.

“트랙터 뒤에서는 반짝이는 원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땅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것은 쟁기질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그 원반들이 잘라 낸 흙더미를 오른쪽으로 밀어내면 또 다른 원반들이 흙더미를 잘라 왼쪽으로 밀어냈다. 땅을 잘라내는 원반의 칼날들은 흙에 씻겨져서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원반들 뒤에 서는 써레가 쇠이빨로 흙을 빗질해 작은 흙덩이를 부숴 땅을 평평하게 골랐다. 써레 뒤에서는 파종기(주물 공장에서 발기한 음경처럼 다듬어진 열두 개의 쇠몽둥이)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즘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땅은 쇠뭉치 밑에서 열매를 맺고 쇠뭉치 밑에서 점점 죽어갔다. 땅을 사랑하는 사람도 증오하는 사람도 없고, 땅을 위한 기도도 저주도 없었기 때문에(<분노의 포도1>, 김승욱 역, 민음사, pp. 75~76).”

트랙터에 밀려 농장에서 쫒겨난 주인공인 톰 조드와 가족들은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막연한 기대를 안고 떠난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다는 그곳에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과일 따는 일을 해서 새 삶을 개척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그러나 오클라호마에서 캘러포니아로 가기 위해 온 가족을 실은 화물트럭이 지나가야 했던 66번 고속도로는 이미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타고온 차들로 가득했다. 동쪽으로 가는 차는 한 대도 없고 모두 캘리포니아로 쫓기듯 고향을 등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드 가족을 비롯한 이주민들은 모두 여정 중 끔찍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린다. 그러나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캘리포니아에는 더 참혹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하려는 사람은 넘쳐나고 농장들은 담합하여 임금은 형편없이 낮아져 있었다. 오렌지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렸지만 대부분 폐기되었다. 한 알의 오렌지면 한나절의 허기를 면할 수 있는 농장 노동자들의 퀭한 눈앞에서. 파업과 쟁의를 염려한 농장주들은 갖은 술수로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폭력으로 위협했다. 기아와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일자리 전쟁에 인간성을 잃고 야수와 같이 타락한 ‘인간성’이었다.

스타인벡은 실제로 당시 트랙터에 밀려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행렬을 따라 함께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집필의 동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사태(대공황과 그로 인한 여파)에 대해 책임이 있는 탐욕스러운 놈들에게 수치심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싶다.” 오직 탐욕만을 동기로 일어난 산업화와 기계화로 득을 본 기업가와 자본가의 뒤에는 훨씬 많은 사람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누가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런 기록이라도 없었다면 말이다. 조드 가족에게 고난을 겪게 만든 장본인은 트랙터라는 기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이용한 인간이었다.


1930년대의 트럭터의 모습, 당시에 tractord out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트랙터는 수많은 사람을 농장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산업화와 기계화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므로 걱정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이들의 말을 듣고 보면 ‘결과적으로’라는 말이 ‘저절로’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난한 이주자들로 우글대던 캘리포니아를 실업과 타락이라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한 것은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공장이 생기고 일자리가 생겼다. 소설은 농장에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끝나지만, 아마 조드 패밀리가 살아남았다면 군수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비마다 전쟁이 해결책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인류는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등장하는 기계들 그리고 앞으로 나올 기계들은 조드일가를 쫓아낸 트랙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100명의 일이 아니라 수만명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이 1930년대의 오클라호마의의 자본가와 캘리포니아의 농장주와 같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과연 있을지.

제2의 기계시대에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지혜와 양심의 눈이 필요하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의 초판 표지(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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