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_그냥 일에 묻혀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계속 얻고 느끼고 하면서

NFS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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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1994년생)

  • 인터뷰날짜: 2019년 6월 28일 
  • 직업: 방송국 근무
  • 거주도시(기간): 미국 켄터키주 파두카(1년)/ 영국 웨일즈(6개월)
  • 사용언어: 한국어/영어


Q. 켄터키는 어떻게 가게 됐어요?

저희가 3남매인데 누나가 먼저 갔다 왔고 저도 갔다 왔고 저희 늦둥이도 있거든요. 다음 주에 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번씩 갔다 오는 게 문화처럼 돼서, 갔다 오고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동생도 가고.


Q. 누나가 다녀와서 바로 본인이 갔다고 하셨는데 뭐가 그렇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좋아서 갔다 왔다고 하기보다 누나가 다녀올 때쯤 너도 가자고 해서 바로 가게 된 거였고, 뭐가 좋았다기보다 외국에 나가면 좋잖아요, 그 때 또 어리니까 영어공부에도 좋고 그래서 갔다 왔던 거였어요. 


Q. 그 때 부모님은 어떤 입장이셨어요? 영어공부를 위해서? 아니면 다른 어떤 교육적인 효과가 있기를 바라서?

일단 영어공부였지만 사실 영어공부 그 이상을 많이 누리고 왔기 때문에 그래서 결과론적으로는 되게 그 때 당시에 거기 다녀온 게 제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줬거든요. 그래서 사실 영어 하나만 잡았다고 보기보다 여러 가지로 좋았어요. 


Q.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으세요?

구체적으로 일단은 그래도 환경이나 문화가 다르니까 넓게 볼 수 있는 게 그 나이대에는 컸고. 한국에서는 맨날 학원가고 틀에 박힌 삶이었다면 좀 자유롭고 자연이랑 친해지는 그런 게 많았고. 거기에서는 완전 도시에 살다가 시골 같은 데 가니까 저 그런 데 처음 살아봤거든요. 계속 서울에만 살아서. 그래서 약간 삶의 환경변화가 컸어요. 차 없으면 못 다니는 그런 곳에서 살기도 했고. 


Q.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불편했죠.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같은 게 없다고 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차가 있어야 하는데 자차가 없으니까 가고 싶을 때마다 나갈 수는 없거든요. 주변 친구들한테 택시기사 고용하듯이 내가 돈 줄 테니까 우리 집 앞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하고, 친구들이 데리러 와주면 놀러 나가고 그런 적도 있었고. 그렇게 지냈어요. 


 


Q. 본인은 도시를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으세요, 아니면 시골을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으세요?

저는 도시가 좋아요. 물론 조용하고 그런 건 좋지만 성격이 그런 것보다도 활발하고 그런 성향이라서 나가면 다 할 수 있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거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유, 환경에서 오는 여유가 되게 컸어요. 


Q. 그게 그립지는 않으세요? 바쁘게 지내다 보면. 

그립죠. 당연히. 그리울 때도 있는 그게 주생활이 되는 건 원치는 않아요. 그냥 그럴 때도 있었지, 이 정도. 


Q. 그럼 동생도 곧 가는데, 동생한테 무슨 얘기를 해주셨어요?

동생한테는 가서 책 볼 생각하지 말고 영어가 안 되도 무조건 사람 많이 만나고 말 많이 하고 할 수 있는 것 많이 하고 오라고. 1년 놀다 온다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놀다 오라고 했어요. 왜냐면 거기서 노는 것도 배우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외국 나와서 책 보지 말자는 생각이 있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때 사람들이랑 부딪히면서 영어도 많이 늘고 문화적인 것들이나 저 스스로도 변화가 된 게 많아서, 동생한테도 사람 많이 만나고 좋은 것 많이 보고 하면서 즐기다 오라고 말해줬죠. 


Q. 뭐가 어떻게 변한 것 같으세요?

저 개인적으로요? 저는 원래 어릴 때 축구를 하려고 했었는데 운동을 하다가 이제 뭔가 잘 안되고 이럴 때 갔었거든요. 그래서 공부랑 완전히 거리가 있었는데 거기가 워낙 시골이다 보니까 생각할 시간이 많았거든요. 혼자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 맨날 나가서 치이지 않고 여유있게 생각해보고 그럴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럴 때 돌아보면 어차피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 해야겠다는 이런 걸 많이 다짐하고 왔어요. 실제로 한국 와서 더디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생각하기에 갈 수 있는 대학교의 이상을 갔고, 거기서도 인종차별을 당해가지고 막 싸움 나고 그래서 학교 퇴학당할 뻔하고 그랬거든요. 그 때 당시에 같이 살던 홈스테이 가족들이 그냥 폭력을 행사했다고 저를 내쫓았는데 저희 가족은 중도에 퇴학당하고 그러면 좀 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 전혀 없이 괜찮으니까 빨리 오라고 이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부모님의 사랑 같은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되게 철이 빨리 들었어요. 고등학교 말미까지도 되게 철없이 구는 학생들도 되게 많잖아요. 성인이 돼서 그렇지만. 저는 부모님이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고 정말 사랑이 큰 분들이라는 걸 많이 느껴서 부모님한테 실망시키지 않는 아들 되려고 한국 돌아와서부터 많이 노력을 해서 그래서 여러 가지로 사람이 돼서 왔다고 봐야 돼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웃음) 공부도 안하고 놀러만 다니던 애였는데, 완전 바뀌어 와서 부모님한테 잘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미국을 간 게 되게 고맙죠. 


Q. 되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셨네요. 원래 운동하다가 공부로 전향? 전향이라고 해야 하나, 되게 힘드셨을텐데 바뀐 게 많이 자극이 됐었나봐요. 미국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와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게. 

처음에 와서 처음으로 진짜 내 힘으로 공부를 해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맨날 학원이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 다녔지만 하기 싫은데 다닌 거였고, 미국 갔다 와서는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는데, 그 때 첫 공부하고 받은 등수가 전교 100등이었는데 100등이 높은 등수는 절대 아니잖아요. 근데 제 기준에서는 너무 높았거든요. 왜냐면 미국 가기 전에 한국에서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5백 몇 등이었거든요. 완전 꼴찌수준이었는데, 물론 미국보다 인원이 적기도 했고 다른 학교라서 분위기나 이런 것도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500등 이러던 게 100등을 받으니까 그 때 더 불타올라서 공부를 더 했던 기억도 있어요.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자극 많이 받아서 끝까지 열심히 했고 어쨌든 대학도 갔죠. 


 


Q. 웨일즈는 왜 간 거예요?

어학연수로 갔어요. 


Q. 왜 웨일즈로 갔어요?

그건 프로그램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따라 갔어요. 거기 웨일즈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영어 프로그램 겸 이렇게 해가지고. 제가 축구를 좋아하니까 영국의 축구문화 이런 게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것도 있고, 그래서 간 것도 있어요. 주말마다 기차타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축구 구장도 가고 그랬었어요.


Q. 어학연수 프로그램이어서 웨일즈로 갔다고 하셨잖아요. 영국으로 간 것도 의도한 게 아니었던 건가요?

막 영국을 무조건 가야지 해서 간 건 아니었지만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어서 그냥 맞아서 간 거였죠. 잘 됐다 해서. 


Q. 웨일즈에서는 어떤 도시에 있으셨어요?

브리젠드라는 도시였어요. 


Q. 이 쪽으로 어학연수를 많이 가나 봐요?

저희 교회에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교회에서 하는 어학연수 신앙 프로그램? 그런 거예요. 


Q. 웨일즈에서 기차타고 여기 저기 다니셨다고 했는데 또 어디 가보셨어요?

맨체스터, 리버풀, 런던, 스토크나 제가 축구팀 기준으로 다녔어요. 어느 지역을 가야지 하고 간 게 아니라 연고로 하고 있는 팀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저는 목표였기 때문에 그런 대표적인 곳으로 다녔어요. 경기를 보러 간 경우도 있고 경기를 못 봐도 구장이라도 보고 오자고 해서 간 구장도 있었고. 


Q. 왜 그게 동기가 된 거예요?

우선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맨날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곳들이니까 실제로 가서 보면 저는 그게 되게 좋았죠. 스완지나 카디프 같은 곳도 거기는 웨일즈거든요. 가까워서 갔었죠. 스완지에 그 당시에 기성용 있었거든요. 스완지 경기도 많이 보러 가고 그렇게 많이 다녔어요.


Q. 그 때 다니기 잘 한 것 같으세요?

네. 잘 했죠. 어쨌든 그런 경험이 저한테 쌓이니까 좋았죠. 도시 분위기도 다 다르고 그래서. 


Q. 어떤 도시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저는 리버풀이 되게 좋았어요. 거기가 도시인데 바다를 끼고 있거든요. 해안도시 느낌이 나서 되게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왼쪽을 보면 바다고 오른쪽을 보면 도시인 그런 느낌이어서 분위기가 되게 좋았어요. 그냥 거기 자체 분위기가. 


Q. 계속 서울에서 자고 나라셨다고 했는데, 바다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으신 건가요?

그쵸. 바다랑 안 친하니까 여행이나 가야 보는 게 바다니까. 근데 이제 바다라고 하면 항상 이제 지방에 여행갈 때 이런 느낌. 저는 바다 근처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또 모르겠지만. 리버풀이 좋았던 이유는 뭔가 내가 사는 서울같이 생겼는데 거기에 바다가 있는 거예요. 그런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도시인데 바다가 있는 느낌.


 

Q. 대학 전공이 뭐였어요?

저는 체육학이요. 


Q. 그럼 대학을 진학할 때에는 체육 쪽으로 갈 생각이 있으셨던 거예요?

네.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어쨌든 축구 때문에라도 뭔가 체육 쪽에서 일을 해야지 하는 막연한 꿈이 있어서, 체육대학 가야지 하는 그런. 그리고 성적도 제가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뭔가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그랬거든요. 그래도 예체능 쪽이 좀 덜 하잖아요. 그런 이유에서도 사실 있었고, 그랬어요. 


Q. 체육학과는 어떤 친구들이 많이 오나요? 운동하는 친구들이 많이 오나요?

저희 체육대학이 되게 커요. 체육대학 안에 다섯 개의 과가 있거든요. 저는 체육학과고 스포츠지도학과라고 해서 현역선수들이 오는 과가 있고 태권도학과가 있고 스포츠의학과가 있고 골프산업학과가 있고 그래서 저희 과는 되게 다양한 친구들이 많이 와요. 무슨 운동 주종목을 가진 애들이 오는 게 아니라 성적 맞춰서 오는 애들도 있고 운동을 저 같이 좋아했던 애들도 오고. 복합적인 걸로 많이 와요. 하나 뭘 하는 것보다. 선생님 하려고 오는 애들도 있고. 


Q.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하셨는데 또 영국 말고 어디 가보셨어요?

영국 말고 유럽에서는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체코, 이탈리아 그냥 뻔한 유럽여행. 배낭여행으로 갔어요. 아프리카 가나도 갔었어요. 거기는 자원봉사로 갔어요. 그건 교회는 아니고 선교단체로. 그리고 동남아 가족여행. 여기 저기 다녔어요. 가나는 제가 땅을 밟은 건 아니고 제가 타는 배가 가나를 와서 제가 그 때 가나에 있어서 공항에 내려서 배까지 가다가 밟은 게 다여서.


Q.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셨어요? 리버풀을 제외하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든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곳이라든가. 

특별한 경험으로 말하면, 스페인 갔을 때 말라가 라는 도시를 갔는데 거기 바다를 갔는데 다 벗고 있어가지고. 그게 좀 특이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 되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태닝을 즐기는 사람들. 오히려 그걸 보고 놀라면서 눈을 가리고 부끄러워 하고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해지는 그런 게 신기했고 그런 문화나 사고가. (웃음) 그리고 음식은 한국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음식은 어딜 가도 한국이 제일 맛있다는 걸 제일 느꼈고. (웃음) 또 특이했던 건 네덜란드에 자전거가 엄청 많은데 사람들이 차보다 자전거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진짜 모든 사람들이 교통수단이 자전거인 느낌이었어요. 역이나 이런 곳마다 자전거 주차장이 엄청 있고 그런 게 신기했어요. (네덜란드 어디에요?) 암스테르담이요. 걔네는 길마다 물이 흘러서 밑에. 그 뭐라고 하지? 하천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도 되게 시원시원한 느낌이었어요. (사람들 분위기가? 아니면 풍경이?) 풍경이 자체가, 길 중간 중간마다 물이 나 있는 곳이고 그런 걸 잘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어떤 도시의 풍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저요? 제가 관심을 갖는 것보다 보고 느낀 걸 말하는 거예요. (웃음) 제가 본 것들. (보통 도시의 뭐가 좋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풍경이 좋았다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요? 다들 사람을 얘기하나요? (문화? 이런 것들?)


 


Q. 가나는 어땠어요?

가나를 땅을 다닌 게 아니라서. 가나의 배가 있어서. 배가 전 세계를 도는 배거든요. 합류하는 당시에 배가 가나에 있어서 가나에서는 사실 공항에 내려서 배 타러 가는 길 말고는 가나 땅을 밝거나 한 건 아니어서. 


Q. 배가 무슨 배에요?

로고스호프라고 선교선이에요. 그걸 타고 계속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선교하고 봉사하는 그런 선교단체. 


Q. 독특한 경험을 하셨네요. 그럼 졸업은 언제 하신 거에요?

졸업 아직 못 했어요. 8학기를 다녔는데 학점을 못 채워서 돌아오는 학기에 9학점 남아서 회사 다니면서 사이버강의로 듣고 내년 2월 졸업해요. 


Q. 그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먼저 되신 거네요. 어떻게 일이 잘 풀렸어요?

기도 열심히 해서. (웃음)


Q. 특이하게 방송국으로 가셨는데 무슨 계기가 있어서 방송국 일을 하시게 됐는지.

저는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에 와서도 했던 게 학교 내에 스포츠매거진이 있었거든요. 거기 축구팀 담당으로 들어가서 저희 학교 축구부 애들, 경기 따라다니면서 기사 쓰는 기자를 했었어요. 근데 이제 그걸 하다가 조금 더 마음이 커져서 수원삼성 구단 기자로 거기서 1년 있었고 그렇게 하면서 뭔가 글 쓰고 기자 일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그러다 보니까 졸업 앞두고 나서 직업이나 이런 것들 고민할 때 그 쪽으로 봤거든요. 기자.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언론사 보게 되고 그러다가 잘 기회가 열려서 이번 2월에 들어왔어요. 얼마 안 됐어요. 첫 직장이에요. (웃음) (축하합니다. 이 청년 실업시대에 좋은 직장을 들어가기 힘든데, 다들 선망하잖아요.) 그런가요? (웃음) 감사합니다. 방송국에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는 해요. 세상 소식 보는 게. 


Q.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직업이잖아요. 어때요? 그런 것들이 즐겁나요?

잘 알고 계시네요. (웃음) 저는 축구 말고는 딱히 관심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정치라든가, 사회 소식이라든가 이런 걸 솔직히 잘 몰랐거든요. 제가 뉴스부에 있다 보니까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뉴스를 다루다 보니까 일을 하는데 약간 공부하는 느낌? 그래서 일하고 나면 그게 다 머릿속에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좋아요. 재밌어서. 뭘 보면 그게 내 것이 되고 워낙 완전 하얀 도화지였기 때문에 보는 것 마다 새롭게 아는 사실들인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유익한 것 같고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모르지만. 그래서 안테나를 세우고 일을 하지만 되게 유익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Q. 뉴미디어국 이라고 했는데 뉴미디어라고 하면 SNS 그런 쪽 인가요?

네. SNS랑 스마트폰 자체가 뉴미디어라고 보면 돼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인터넷기사 이런 것들이 과거의 미디어가 TV나 이런 것들이었다면 다 스마트폰으로 보잖아요. 그걸 다 통칭해서 뉴미디어라고 하거든요. 뉴미디어가 아무래도 강화되는 시대잖아요. 그걸로 다 통하는 시대고, 모든 게 다 그걸로 이루어지니까. 그래서 뉴스 서비스나 이런 걸 모든 언론사에서 뉴미디어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거든요. 그 분야에 있다 보니까 일적인 부분을 떠나서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얻는 게 되게 많고, 보는 것 자체가 공부라서. 되게 재밌게 잘 하고 있어요. 


 

Q. 지금 본인한테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든가 걱정거리는 뭐예요?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고민을 하면서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지금 회사생활이 제일 중요한 이슈?) 회사생활하면서 어떻게 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느냐 이런 것? 그냥 일에 묻혀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계속 얻고 느끼고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이 가장 관심인 것 같아요. 여기서 몇 년 동안 일을 할 것이며 그만큼 있다가 어떤 식으로 뭔가를 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뭐를 해야 하고 이런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요. 실행하지 않는 계획들. (웃음) 하진 않지만 계획만 거창한, 생각해보고 이런 것. (웃음) (계획을 세우다 보면 실행도 하게 되죠.) 네. 맞아요. (웃음) 


Q. 계속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으세요?

결과적으로 나중에 봤을 때 그랬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축구산업 쪽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갖고 있죠. 왜냐면 제일 관심 있고 그 일을 할 때 행복한 게 그거라서. 그런 걸 할 수 있으면 좋겠죠. 


Q. 지금도 취미로라도 축구를 하세요?

네. 축구하러 가야 돼요. 좀 있으면. (웃음) (이 시간에요?) 네. 원래 저녁에도 많이 해요. 주말 오전에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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