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언_더 많이 주는 쪽이 제 가치를 증명해준다고 생각을 해서

NFS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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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언(1997년생)

  • 인터뷰날짜: 2019년 5월 16일 
  • 직업: 학생
  • 거주도시(기간): 뉴질랜드 웰링턴(2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하이(3년)
  • 사용언어: 한국어/영어


Q. 웰링턴은 왜 가게 된 거에요?

제가 되게 외국 나가보고 싶고 넓은 세상에서 영어도 공부하고 싶고. 처음에는 미국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되게 미국을 주변에서도 그렇고 위험한 나라라고 인식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린 애가 가기에는. 그래서 조금 더 안전한 뉴질랜드로 먼저 보내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연과 어우러지고. 웰링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웰링턴은 수도에요. 수도인데 사실 대도시는 아니에요. 오클랜드처럼 그런 느낌은 아니고, 웰링턴은 행정 쪽으로만 수도지, 경제적으로 활발한 느낌은 아니에요. 조그만 항구도시 같은 느낌이에요. 바람 되게 많이 불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나 좋았던 일, 슬펐던 일 그런 것 있으세요?

제가 원래 유학원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이제 애들 과외 같은 것도 해주고, 출퇴근도 해주고, 그런. 그러다가 제가 어느 날 서류를 봤는데 선생님들 월급을 주는 게 있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시간에 5만원을 수업료로 냈거든요? 알고 보니까 그 선생님한테는 4만원만 주는 거에요. 제가 봐도 너무 안 맞는 게 많은 거에요. 이건 아니다 싶어가지고 영어도 못한 상태에도 그냥 한 달 만에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냥 기숙사에 넣어달라 해서 기숙사에서 혼자 살았어요. 


Q. 웰링턴은 대도시, 항구도시라는 것 말고 본인이 느끼기에 어떤 도시인 것 같아요? 특징을 얘기하면. 

이제 길거리에서, 되게 특이해요. 되게 공연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기타치는 사람들도 많고. 그 사람들은 관객을 위해서 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즐거워서 그냥 치는 거에요. 거기가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 도시가 아니었는데도 사람들 반갑게 맞아주고, 제가 아시안이라서 무시 당하거나 차별 당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차별이 별로. 제가 다닌 학교가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서는 못 느꼈던 것 같아요. 


Q. 거기서는 주로 어떤 공부를 했어요?

저 거기서 중학교 다녔는데, 특이한 하나는 정규수업 과정에 마오리어를 배워야 되거든요. 영국인들 들어와서 원주민들 죽이고 땅 빼앗고 막 그랬잖아요. 걔네들 거기서 되게 마음 아파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영국인들이 이 땅에 와서 침략을 했고 몇 명을 죽였고 그러면서 마오리어를 배울 수 있게 역사교육을 시키더라고요. 처음부터. 


Q. 국제학교가 아니라 현지학교를 다닌 건가요?

저는 Scots College라고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80%는 현지인이고 나머지 20%는 국제학생을 받는 걸로 알고 있어요. 


Q. 그 이후로 본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사실 자기의 추악한 과거나 아픈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켜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멋있다고 생각했었어요. 



Q. 고등학교 3년을 왜 캘리포니아 오하이로 갔어요?

말도 안 되는 경험이긴 한데, 제가 이제 미국을 너무 가고 싶은 거에요. 뉴질랜드에서 어느 정도 영어를 했으니까 또 부모님을 설득했죠. 위험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수업을 받는 게 필요하다 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아버지 아시는 분이 캘리포니아 주변 학교투어를 했대요. 투어를 했을 때 너무 인상깊어서 거기 학교를 가게 됐는데, 일단 특이해요 학교가. 채식만 할 수 있어요. 거기는. 자연친화적인 그런 거라서 동물을 죽이면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Q. 본인은 채식을 하는 게 아닌데 하게 된 거네요? 어땠어요?

맨 처음에 사실 저는 미국이라고 해서 아메리칸 드림 이런 거 막 신나서 갔어요. 꿈을 안고 딱 갔는데, 둘러보니까 학교건물로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거에요. 오두막이에요. 되게 다 오두막이고 학교 정원도 되게 작아요. 학년 당 10명밖에 없어요. 맨 처음에는 솔직히 싫었는데 좀 신기하더라고. 이름도 Mr. 없이 편하게 이름 부르고. 거기가 아이들이 많이 없는 도시에요. 많이 시골이에요. 대중교통도 되게 불편하고, 트롤리라고 마을버스도 두 시간에 한 대씩 와요. 되게 불편하죠. LA 도시에 한 번 나가는데 차타면 한 시간 반인데 대중교통 타면 트롤리 두 번 타고 역가서 기차타고 또 내려서 트롤리 한 번 더 타고. 


Q. 큰 물에 놀고 싶어서 미국에 갔는데(시골이라서), 좋은 점은 없었어요?

일단 되게 신기한 건 애들이 없어요. 진짜 거리를 다녀도 제 또래는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고. 원래 외국 사람들 인사만 하고 잘 챙겨주진 않거든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근데 거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누구를 보든 자기 손자 손녀들이 그립나봐요. 그래서 되게 집들에 초대를 많이 해주세요. 거기 아이리쉬분이 계셨는데, 아이리쉬 포테이토 해주시고. 또 신기한건 거기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녀요. 차를 타고 다니는데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학교에 말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도 타보긴 했는데 말을 소유는 못 했어요. (웃음) 학교에 마굿간이 있어요. 특이해요. 


Q. 거기에서 인상 깊었던 것 있어요?

거기는 되게 특이하게 간디와 같이 인권운동한 분이 인도에 하나, 런던에 하나, 미국에 하나 이렇게 재단을 내서 학교를 차렸는데, 되게 특이했던 건, 학교 클래스 중에 Mindfulness 라는 클래스가 있어요. 정신통일 막 이런 거 하는. 사실 되게 백인들 명상하고 양반다리하고 이런거 안하잖아요. 그거를 일주일에 2시간씩 의무로 해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종을 땅 때리고 2시간동안 명상을 하거든요. 그게 강제에요. 안 들으면 안 되는 수업인데. 처음에는 되게 싫었는데 마음 비우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특이한 건 Non-competitive School 이라고 해서 경쟁성 없는 학교라고 해서 등수를 안 가르쳐줘요. 학교에서. 


Q. 그렇게 공부하다가 한국 애들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았을 때 되게 충격이었겠네요? 

저는 사실 그 학교 다니면서도 SAT를 준비했기 때문에. 저는 공부를 많이 했는데, 다른 애들은 특이한 활동들 많이 했어요. 승마 이런 것들 하고. 



Q. 특이한 활동 또 뭐 있었어요?

너구리 잡아오라고 했어요. 학교 특성상 동물을 죽이는 건 안 되고 너무 말썽을 피우니까 잡아오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가정집은 너구리들 죽이거든요. 우리는 그냥 덫을 두고 너구리 잡아서 산에 가서 놔주고 오고 그랬어요. 봉사활동 시간에. 


Q. 그 이후로 채식을 계속 하세요?

네. 저는 절대 채식주의자가 아니고요. (웃음) 기숙사 내에서는 먹으면 안돼요. 3끼 다 채식으로만. 밖에서 나가서 먹는 것은 돼요. 스팸이랑 이런 거 아마존에서 몰래 시켜서 먹다가 반성문 써서 내고 그랬어요. 안 맞는 것 같아요. (웃음)


Q. 그 때 명상하고 했던 것은 학교 졸업하고 하지 않았어요?

가끔 마음을 비울 때. 제가 졸업하자마자 군대 갔다가 전역한지 2주 밖에 안 돼가지고, 군대에서는 할 상황이 안됐었어요. (웃음)


Q. 오하이에 있다가 대학을 간 거에요?

제가 대학을 붙었는데, 입학을 미루고 바로 군대를 갔어요. 원래 대학교를 1년 간 다니다가, 재밌게 놀다가 군대를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은 거에요. 다 끝내놓고 집중도 하고 싶었고. 고등학교를 너무 평화로운데 다녀서 그런지 군대가 너무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Q. 군대는 육군으로 간 거에요?

아뇨. 해병대로 갔어요. 저희 형이 해병대를 가서 안 가면 비교당할까 싶어가지고. (웃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군대도 자연이긴 한데 다르죠, 뭐. 


Q. 어떤 게 힘들었어요?

해병대 기수라고 있거든요. 내가 이 사람보다 한 달이라도 먼저 들어오면, 진짜 한 달인데 모셔야하는 게 사상적으로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이렇게 딱 딱 딱 딱. 권력? 정해져 있더라고요. 


Q. 학교는 언제 다시 가요?

학교는 스위스의 로잔이라고 거기로 가요. (왜 로잔으로 가게 된 거에요?) 제가 호텔 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미국의 코넬대 거기도 있기는 한데, 거기랑 스위스 두 개 뜨길래 넣었는데. 코낼대도 인터뷰 잘 봤다 싶었는데, 수시에서 정시로 바꾸더니 안 뽑아주더라고요. 스위스 생각 안 하고 당연히 미국 붙었다 생각했는데, 큰일 났다 생각하고 바로 스위스 가서 바로 면접 봤어요. 


Q. 로잔에는 면접보러 잠깐 갔다 온 거에요? 어땠어요?

3일 살아봤어요. 3일 동안 저는 되게 좋았던 게, 학교 쪽은 시골 느낌인데 차 5분 거리로 도시랑 자연이 어우러져 있어요. 잘 믹스 되어 있는? (거기 물가는 안 비싼가요?) 물가는 헬인 것 같아요. 


Q. 그럼 전공이 호텔경영인데, 왜 그런 쪽으로 하게 됐어요?

솔직히 옛날에는 알았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는데. 호텔가면 프로페셔널하게 대접 해주는 게 대접 받는다는 느낌이 되게 좋더라고요. 나도 이제 다른 사람이 이런 기분들을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하는. 유니폼 입고 그런. 


Q. 외국생활 할수록 그런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외국사람 만나보고 하니까, 더 많이 만나보고 하니까. 그걸 이제 백인판, 흑인판으로 경험해봤으니까,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을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좀 걱정되긴 하는데 군대 가서 별 이상한 애들 다 만나고 나니까 이제 누굴 만나도. (웃음) 제가 잘 못 했다고 때리진 않을거 아니에요. (웃음) (군대를 먼저 갔다 오기 잘 했네요) 네, 웬만한 갑질 해도 저는 해맑기 때문에. (웃음) 



Q. 그럼 이제 8월까지는 뭐할 거에요?

일단 시그니엘호텔에 이력서를 내봤거든요. 3개월 인턴 할 수 있는지. 거기서 인턴 겸 하고 저녁에 프랑스어 인강을 들을 거고, 만약에 떨어지면 프랑스어 학원을 다니려고요. 미리 배워놓으면 편할 것 같아가지고. (기대가 될 것 같아요) 너무 기대돼요.


Q. 지금 제일 큰 관심사는 대학교 생활이겠네요? 만약에 졸업하면 일은 어디서 하고 싶어요?

네. 그렇죠. 아, 학교는 호텔학교이긴 한데 전부 다 호텔로 가지는 않거든요. 40% 정도 낮게만 호텔에 있고 나머지는 럭셔리브랜드 마케팅, 투자은행 이런 쪽으로 가는데 투자은행 이런 쪽 가보고 싶어가지고. (왜 그런 생각했어요?) 돈 많이 주길래. (웃음) 


Q. 그럼 일을 미국이나 이런 데서 하겠네요?

네. 지사별로 많은데, 한국에 들어오면 돈을 적게 줘요. 어느 회사든. 한국에 들어오면 돈이 안돼요, 물론 외국에 나가면 월세 내고 비싸긴 한데, 그래도 더 많이 주는 쪽이 제 가치를 증명해준다고 생각을 해서. (1순위는 미국이에요?) 저는 싱가폴, 홍콩 쪽 있고 싶어요. 그래도 아시아권에 있는데, 아시아권 금융계 허브인? 싱가폴, 홍콩. 가본 적 있는데, 좋더라고요. 


Q. 싱가폴은 어떤 점이 좋았어요?

일단 나라가 되게 깔끔했고, 그리고 이제 아시아인이 더 많잖아요. 동양사회 요소적인 그런 게 저한테 더 맞더라고요. 약간 미국에 살면서 저희 도시는 편했는데, LA, 뉴욕만 가도, 뭐라고 해야 돼지, 백인 사회가 뭔가 아 내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나 그런. 나 혼자 남인 것 같은. 그런 게 별로더라고요. 


Q. 홍콩은 어땠어요?

홍콩은 일단 물가도 괜찮고 음식이 다 입에 맞아가지고 저한테는. 


Q. 그러면 서울에서 생활한지가 2주 밖에 안 된거죠?

네. 근데 그 전에 방학 때 왔다 갔다 했죠. 


Q. 오하이나 웰링턴, 로잔, 싱가폴, 홍콩 이런 데와 비교해서 서울은 어떤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24시 다 배달되는 게 너무 편하고요. 오하이는 진짜 4시반에 다 문 닫아요. 몇 몇 식당 빼고. 마을에 두세 개 있는데, 스시집이나 카레집 빼고 다 닫아요. 일요일에도 장사를 안 해요. 일요일에는 그냥 집에 있어야 돼요. (웃음) 


Q. 서울은 실망스럽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저는 솔직히 이제 너무 시골에만 있다 보니까 도시 좋아하거든요. 아직은 못 느꼈어요. 차 막히는 것 빼고. 제가 살았던 다른 도시들에는 차 안 막히거든요. 차 구경하기도 힘들어서. (웃음) 이제 시골 그만 살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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