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_역량을 좀 더 키워서, 한 연구자로서 일을 좀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아트센터나비
2019-08-05
조회수 620


익명(1992년생)

  • 인터뷰날짜: 2019년 6월 20일 
  • 직업: 대학원생
  • 거주도시(기간): 네덜란드 레이던(6개월)
  • 사용언어: 한국어/영어


Q. 네덜란드는 왜 가신 거예요?

교환학생으로. 대학원 때 갔어요. 3학기 때. 


Q. 어떻게 가게 된 거예요?

제가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거든요. 특히 제가 전공이 문화재 쪽을 하면서 지금 학부 때도 문화재 쪽을 하면서, 동아시아쪽 문화재와 건축, 조경 문화재를 많이 공부를 했었는데 굉장히 막연하게 유럽에서의 문화재 환경이 보존되고 있고 실상이 어떤지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 환경대학원을 들어오게 됐고 그 작은 꿈을 교환학생으로 해소해보려고 가게 됐어요. 


Q. 유학의 꿈은 접은 거예요?

네. (웃음) 그래서 포닥의 꿈으로 남겨두고 있는 중이에요. (웃음)


Q. 왜요?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어쩌다 보니까 유학 준비하는 게 녹록치가 않더라고요. 일단 석사를 끝내고 박사를 외국에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끝내고 보니까 언어도 다시 해야 되고 점수도 다시 만들어야 되고 학교도 알아보고 컨택도 해야 되고 이런 1~2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다시 환경대학원으로 돌아와서 박사를 하게 됐습니다. (웃음) 


Q. 네덜란드의 레이던은 어떤 도시예요?

거기는 작은 대학 도시예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교가 있는 도시거든요. 아마 지금은 가물가물한데 15세기 그 때부터 대학교가 생기면서 도시 전체에 대학교 건물이 산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수업을 들으려면 이동을 하면서 도시를 다녀야하는. 도시 곳곳에 있어요. 저는 수업을 그렇게 많이 안 들어서 조금 이동했지만 다른 애들은 헤이그로도 이동해서 수업을 듣고 했었어요. 그 학교가 암스테르담이랑 헤이그 사이에 있는 학교였는데 헤이그에도 건물이 있어서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레이던에만 있어서. 


Q. 이동은 어떻게 해요?

도시 간 이동은 기차타고 다니고 도시 안에서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되게 멋있는 유학생활이었을 것 같아요) 네.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여유로운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Q. 거기서는 어떤 공부를 했어요?

역사 환경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그 도시 자체가 역사도시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고학이나 이런 쪽으로 발달이 되어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도시를 선택했고 그 학교를 선택했어요. 그래서 고고아트로 수업을 하나 듣고 제가 지금은 북한의 문화재에도 관심이 있어서, 석사도 그 쪽으로 썼었는데요. 그 학교가 한국학으로 유명한 학교에요. 유럽에서도. 그래서 북한 쪽 수업도 많이 듣고 했었어요. 


Q. 도움이 많이 됐어요? 역사 쪽이 발달 된 곳이라 보고 느낀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제가 만약에 영어를 더 잘했더라면 그 도시를 더 잘 이해를 하고 학교 수업도 더 소화를 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았었겠지만 그게 좀 아쉬운 데요. 그래도 거기에 있으면서 오픈매뉴먼트데이라고 해서 한 일주일인가 한 달인가 그 며칠 동안을, 우리나라에서도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하듯이 문화유적을 다 개방하고 거기서 지역주민들이랑 연계해서 행사하고 그렇게 네덜란드 전역에 있는 문화재가 동시에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 저희 도시 안에 레이던 안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행사를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이런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해서 문화유적으로 누리는 문화를 활성화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 새로운 발상인 것 같아요. 걔네들 문화재 입장료가 되게 비싸잖아요. 아닌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몇 몇 투어료가 조금 받고 했던 것 같은데. 



Q.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안 좋았던 기억이나 있어요?

안 좋았던 기억은 일단 뭐랄까, 이게 날씨가 너무 우울해지더라고요. 제가 8월말에 갔었는데 그 때는 굉장히 쨍하고 날씨가 좋았어요. 한 11월? 그 때부터는 너무 그레이해요. 하늘이. 그래서 되게 점점 우울해졌던 것 같아요. 해가 많이 안 뜨니까, 해가 늦게 뜨고 또 빨리 지고 하니까 굉장히 사람이 어두워지는 것 같고, 여기에 있는 친구들도 잘 못 보고 시차도 차이 나니까 뭔가 그래서 더 우울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보다 더 빨리 귀국한 것 같아요. 한국이 그리워져서. 


Q. 그러면 한 학기 하고 돌아오신 거예요?

네. 8월말에 가서 1월에 왔어요. 사실 2월 비행기였는데 당겨서 왔어요. 근데 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어두운 하늘을 사랑하더라고요. 더치페인팅 보면 어두운 하늘을 강조해낸 페인팅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풍경화가 뭔가 출발되기도 하고 그래서 참 저희랑은 다른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날만 밝으면 밖으로 나가서 일광욕을 하고, 그냥 호숫가인데도 모래를 깔아놓고 바다처럼 일광욕을 즐기더라고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11월, 12월의 우울한 기후를 느끼다 보니까 저도 우울한 그런 걸 느끼더라고요. (동참하진 않았고요?) (웃음) 네. 그 때는 그렇게 막 수영복 입고 호숫가에서 있는 게 익숙하지는 않더라고요. 해수욕장이나 가야 거기서는. (웃음) 카페에서 그들을 보기만 했던 것 같아요. 


Q. 친구들을 새로 안 만났어요?

거기가 한국학과가 잘 되어있는 학교이다 보니까 language exchange 제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학과 네덜란드인 친구들이랑 한국인들이랑 서로 짝을 지어줘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게끔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난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 저는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그 친구들을 영어를 가르쳐주고. (재밌는 프로그램이네요) 한 학기동안 공부를 같이 하면서 나도 영어로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거기 갔다 와서 논문학기를 바로 들어 간 거에요?

바로 쓰다가 잘 안되어서 그 다음 학기에. (웃음) 


Q. 논문 쓸 때 도움이 좀 됐어요?

사실 출발하기 전에는 여기서 선진문화재를 보호하는 정책이나 그런 실태를 좀 스터디를 하고 배워서 논문에 옮겨볼까 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그걸 짧은 몇 개월 안에 공부해서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혀 다른 맥락의 논문을 쓴 것 같아요. 



Q. 어떤 게 가장 힘들까요? 유학생활에. 저도 사실 유학 갈 용기를 못 내서. 여행 다니는 건 좋아하는데, 돈 문제도 복잡하고, 혼자 몇 년씩 사는 것도 그렇고. 엄두를 못 냈거든요. OO씨는 어떤 게 제일 두려웠어요?

저는 출발할 때는 전혀 다 뭔가 돈 문제가 걱정될 것 같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돈은 어떻게 해서든 생길 것 같더라고요. 제가 단소를 좀 부는데, 단소연주를 해서 몇 유로씩 받아서 하면 먹히겠다? (웃음) 그런 생각을 하고, 싸가기는 했는데요, 실제로 하지는 못 하고. (웃음)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문제는 어디 깊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게 힘들 것 같았어요. 제가 학부도 집에서 멀리 있는 곳에서 나와서 그렇게 타지생활을 했었는데 그 때도 가족 생각이 많이 안 났거든요. 근데 막상 나가서 살아보니까 어떤 결정을 해야 될 때 내가 가족한테 참 의지를 하고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느꼈던 것 같아요. 외로움? 기댈 곳이 없다는 것? 그 부분이 가장 큰 것 같아요. (6개월 갔다 와서 그걸 더 실감하고 왔군요.) 네. 그래서 뭔가 여기 괜찮으면 박사도 여기서 생각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갔다 오고 나서는 마음이 좀 희미해진 것 같아요. 


Q. 거기서는 어디서 살았어요?

네. 기숙사에서 살았어요. (룸메이트가 있었어요?) 네. 대만인이었는데요, 큰 한 방을 같이 쉐어하는 식으로 살았어요. 


Q. 그 친구랑은 영어로 얘기했겠네요.

네. 영어로 얘기하는데 그 친구도 영어권에서 온 친구가 아니고 해서 둘 다 더듬더듬 하면서 말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하지 않고. (웃음) (재밌었겠네요)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한국 요리도 해주고 그 친구는 요리를 잘 못해서 그냥 저랑 같이 한국 요리 할 때 도와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음식 잘 해요?

가기 전에는 사실 집에서는 그렇게 많은 요리를 안 해본 것 같은데, 가서 하다 보니까 소질이 있구나 이런 걸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유럽의 다른 동네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갔을 때 외국인 친구들이랑 해먹는데 레전더리 마스터셰프라고 해줄 정도로 제 음식을 잘 먹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웃음)


Q. 한국학을 공부하려고 오는 친구들은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러 오는 거예요? 한국에 대해서 얘기를 할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주로 어떤 걸 궁금해하나요?

근데 그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한국문화를 토대로 교재도 나오고 웬만한 건, 오히려 유행어나 이런 걸 그 친구들이 더 잘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그 한 주마다 토픽이 나왔는데 그 토픽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그런 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도 알고 있고 오히려 유행어는 그 친구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어쩌면 제가 더 배우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아이돌도 저는 잘 몰랐는데 거기 가서 BTS를 처음 알았던 것 같아요. (웃음) 방탄소년단이 BTS 라고 불리우고 있구나, 인기가 많구나를 거기서 알았던 것 같아요. 


Q. 광주 자주 못 가겠네요?

네. 이미 부모님도 서울에 계셔서. 수업 때 답사로 예전에 교수님이 비엔날레 갔다 오라고 해서 그 때 간 것 같아요. 


Q. 사실 상 서울이 본 거주지네요. 약간 의도된 질문이지만, 레이던 갔다 오고 나니까 서울에 달라 보이는 게 있었어요?

저는 레이던에 갔을 때 뭔가 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일단 거기는 산이 없잖아요. 바다를 메꿔서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다 낮잖아요. 높은 건물도 없고. 그래서 너무 트여있는 게 생소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산이 그리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스트리아 같은 데로 여행을 가면 그제서야 산이 보이더라고요. 반갑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산이 뭔가 반가운. (웃음) 그리고 서울에 오니까 다시금 위호된 느낌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반가웠던 것 같아요. 서울에 있을 때는 이게 뭔가 답답해서 빨리 떠나고 싶고 이런 밀집된 사람도 싫고 하니까 빨리 떠나고 싶은데, 너무 그렇게 허허벌판에 그런 곳에서 살다 보니까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게 오히려 더 반가웠던 것 같아요. 



Q. 본인은 도시를 선호하는 타입이에요, 교외를 선호하는 타입이에요?

저는 제가 교외를 선호한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렇게 다시 돌아오고 와서 보니까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익숙한 언어가 들리는 환경에 노출되는 걸 되게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외국에 있었을 때. 계속 영어로만 얘기하고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중국인으로 오해하고 약간 놀리는 듯한 식으로 다가오려는 사람들 밖에 없어서 그런지 되게 한국어로 쓰인 간판, 한국어로 하는 말들, 노래들 그걸로 둘러싸인 환경 그게 그리웠던 것 같아요. 한국사람이 많은 곳에서 둘러싸인. 그래서 도시를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Q.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뭐예요?

저는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산림과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거기서 국제산림연구과에 북한산림과가 있거든요. 그래서 석사 논문을 쓰고 나서 북한에 대해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간 곳이고요. 지금은 여기서 북한 산림 관련된 북한 원전을 좀 발굴해내서 그런 자료를 정리하는, 그리고 지도집으로 발간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Q. 북한 자료는 어떻게 접근해요?

북한 자료를 생각보다 되게 많은 자료가 남한에 있어요.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북한자료센터가 있어요. 거기서 많은 자료가 있거든요. 거기서 대여도 하고 복사도 하고 그렇게 보고 있어요. 


Q.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문화재를 공부하면서 학부 때, 그런 고문헌을 접할 수밖에 없잖아요. 고문헌에서 북한 지역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 그러면서 약간 호기심이 있었다가 북한 공부를 좀 해보니까 그렇게 원전을 발굴해서 여기서 내용을 보는 게 약간 고문헌을 발굴해서 보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 있었어요. 그래서 더 재밌게 느꼈던 것 같아요.


Q. 그럼 대학원은 석사를 마치고 바로 박사로 온 거에요?

네. 한 학기하고 병행했어요.


Q. 파트로 하게 된 이유는 어떤 게 있었어요?

제가 사실 4대 보험을 받고 일을 한 게 이 회사가 처음인 것 같아요. 잠깐씩 일을 도와드린 적은 있어도, 그래서 어떤 연구실에 소속돼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까 박사를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마무리하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번 년도 까지는. 


Q. 박사를 하겠다고 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석사만 졸업해가지고 그 경력이나 연구경험을 가지고 연구원으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지금도 석사연구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계약직으로 다니는 거고 박사로서 역량을 좀 더 키워서 한 연구자로서 일을 좀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그럴려면 빨리 시작해야겠다 해서 시작했어요. 



Q. 개인적으로 큰 관심사나 걱정거리는 뭐예요?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보니까 결혼? 그리고 박사 졸업 후에 진로? 아직 좀 멀었지만. 그게 조금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Q. 결혼은 할 사람이 있는데 해야 될까 가 고민인 거예요? 아니면 해야 되는데 할 사람이 없는 게 고민인 거예요?

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 네. 


Q. 그런 건 걱정 안 돼요? 결혼하는 것도 내가 여자로서 또 다른 내가 되는 건데 거기에 직장에 학교까지. 

네. 그래서 그 시점이 더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연구실에도 박사님들이 애기 엄마들인데 박사를 끝내놓고 결혼을 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절대 늦은 나이 아니니까) 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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