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_포기하려고 하면 문이 계속 열리길래, 일단 한 번 가보자.

NFS
2019-08-05
조회수 9


익명(1990년생)

  • 인터뷰날짜: 2019년 6월 20일 
  • 직업: 프리랜서 작가
  • 거주도시(기간): 캐나다 밴쿠버(12년)/ 몬트리올(2년)/ 토론토(1년)/ 미국 프로비던스(3년)
  • 사용언어: 한국어/영어


Q. 처음 밴쿠버에 가게 된 계기?

아버지께서 한국 교육 시스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셔서,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내 딸들은 저렇게 숨 막히는 시스템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 하셔서, 밴쿠버와 토론토 두 도시를 고민 하시다가 그냥 자연에서 뛰놀아라 해서 밴쿠버로. 토론토는 아무래도 교육의 도시이다 보니까. 그래서 밴쿠버로 가게 됐어요. 


Q. 그럼 형제가 어떻게 돼요?

언니 있어요. 아버지가 기러기생활을 7년 하셨어요. 엄마, 언니, 저 셋이서. 


Q. 캐나다로 책정하게 된 계기를 아세요?

거기에 아는 지인이 있으셨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캐나다랑 미국이랑 비교하자면 비자도 훨씬 쉽고, 미국은 총기도 소지할 수 있고, 캐나다는 아무래도 안전으로 유명하니까. 


Q. 밴쿠버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까지, 되게 오래 계셨네요. 

네. 한 15년 있었던 것 같아요. 


Q. 밴쿠버는 어떤 도시였어요? 주관적으로 얘기해주셔도 돼고. 

매우 liberal한?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자연은 최고인? 근데 cultural diversity가 되게 요즘에는 심각해졌어요. 갑자기 중국분들이 이민을 오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이 Discrimination이 심해졌어요. 백인들이 안 좋게 보는? 최근에도 제 친구들이 밴쿠버 가면 되게 안 좋은 경험 많이 했다고 들어요. 대놓고 눈 찢어지는 행동을 한다거나, 되게 심해진다고 들었어요. 제가 토론토로 1년 살게 된 경험이 저는 캐나다에서 산다면 토론토에 살 것 같아요. 밴쿠버에는 살고 싶지 않아요. 차별문제 때문에. 이게 잘 녹아지지가 않았어요. 2세대, 3세대 이렇게 천천히 문화가 들어오고 섞이고 그래야 되는데, 밴쿠버는 급작스럽게 충돌이 있고 그랬다면 토론토는 오랜 시간 동안 cultural assimilation이 빨리 된 것 같아요. 


Q. 토론토는 차별이 별로 없어요?

없어요. 되게 신기했던 게 흑인이 별로 없어요. 밴쿠버는. 근데 토론토에 살아 보니까 흑인, 인도사람, 다 백인들이랑 어울려서 영어도 되게 잘하고. 그냥 녹아드는? 아시아인은 아시아인들끼리 노는 지역도 있고. 한국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있고, 중국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있고. 거기 정말 가보면 영어 안 써요. 상점에 들어가면 대놓고 다 중국말로 해요. 버스드라이버도 정작 영어로 하면 중국말로 돌아와요. 그래서 그렇게 도시가 나뉘어진 데가 많고, 밴쿠버는. 토론토는 그런 게 없고. 


Q. 오래 밴쿠버에 있었는데도 녹아들지 못 했다는 생각이 드시는 거죠. 그런 이유로 토론토로 가신 건가요?

그건 아니었고, 대학원을 끝나고 나서 어디로 이사를 갈까, west coast, east coast 너무 머니까 토론토도 한 번 도전해보자 했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 산다면 꼭 토론토에 살아야 되겠다 느꼈어요.


Q.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래도 east coast 쪽이 더 경제적으로 활발한 게 있고, 큰 도시, 회사들도 많이 있고. 밴쿠버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크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도시라는 느낌은 없고, 자연 아름답고 애들이 뛰어 놀기 좋고, 어린 애들이 살기 좋은 곳인데, 저 같은 청년들이 살기에는 큰 도시를 경험하고, 왜냐면 근처에 뉴욕도 있고 시카고도 있고 보스턴도 있고 다 편리하더라고요. 노후를 생각하면 밴쿠버인데, 토론토는 아무래도 그게 좋더라고요. 


Q. 밴쿠버는 자연이고 토론토는 도시, 자연이 아름다운 밴쿠버에서 살았다는 게 본인에게 영향을 준 게 있어요?

되게 산책을 많이 했어요. 좀 느긋한 여유를 스스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바빠도 밖에 나간다거나 산책을, 강가를 찾아간다거나 아무리 바쁜 생활에도 여유를 찾게 되는? 좀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운동하는 사람들도 거기 되게 많거든요. 운동이 기본이기 때문에. 운동도 찾게 되고 좀 사색하는 것도 좋아하게 되고. 



Q. 몬트리올에서는 얼마나 있었던 거예요?

대학교를 2년 동안 다니다가, 좀 있었어요. 


Q. 몬트리올은 어떤 도시였어요?

되게 추운 도시였는데. (웃음) 너무 추운 도시였는데, 신기했던 게, 제가 다녔던 대학교 맥길이 딱 도시 가운데에 있어서 되게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다른 데를 가보지 못 했어요. 몬트리올은 Everything is in the central. 그래서 학생이었던 것도 있어서, 밖에 많이 못 나갔었어요. 아무래도 기숙사 밖에 안 살았고 차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모든 게 원만하게 가능했다? 시험치고 쇼핑하고 바로. 5분이면 쇼핑가니까. 고기 썰고 있고. 뭔가 중심적으로 있었던? 아, 기억나는 게 있다. 빈부차가 좀 심했던? 제가 기숙사 살다가 홈스테이를 하기 시작했는데, 좀 멀었어요. 30분 거리였는데, 되게 안 좋은 쪽? 흑인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빈부차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대학 다니는 애들은 돈도 좀 있고 미국에서 올라 온 애들도 많기 때문에. 근데 여기서 사는 유학생 여자애 한 명은 납치당할 뻔한 적도 있고. 저도 막 삥 뜯긴 적 있고. 흑인한테. 도시상황을 잘 모르니까, 막상 가보니까 아무래도 다운타운은 안전한데 벗어나면 못 사는 사람들, 지역들이라던가 그런 게 확 느껴지더라고요. 


Q. 혹시 밴쿠버에서는 특별히 기억나는 일 없으셨어요?

밴쿠버요? 되게 liberal한 도시라서 이번에도 마리화나가 합법화가 됐잖아요. 모든 게 앞서가는 도시인 것 같아요. gay marriage도 예전에 기억나는 게, 미국에서 이게 합법화가 되지 않기 전에도 계속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결혼하기 위해서 밴쿠버로 온다거나, 그리고 gay street가 따로 있었고 2000년 초반기 때도. 생각해보면 계속 앞서가는 도시? liberal한 쪽으로? 마리화나도 그렇고. 메디컬도 예전부터, 이제는 레저까지. 뭐 그런 것들도 느끼는 것 같고. 그런 게 신기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연을 되게 중시해요. 경제보다 자연이에요. 


Q. 뭔가 일관되지 않는 느낌이네요?

그쵸. 뭔가 contrast가 있죠. (웃음) 뭔가 ironic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전혀 보수적이지 않아요. 차별도 저도 어렸을 때는 못 느꼈어요 솔직히. 근데 대학교 때부터? 이유가, 타당되는 게, 모든 land들을 중국분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그래서 백인애들이 저한테 대놓고 동양인인데, 어딜 가도 렌트를 하려면 다 중국사람이다, 이게 말이 되냐, 난 캐나다인이고 캐나다 땅인데.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고. (웃음) 그런 것도 있고 맥클레인이라고 되게 유명한 잡지도 있었는데, 대놓고 그런 잡지에 실은 기사 중에 하나가 왜 이렇게 university에 중국사람들 많이 받느냐고.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난 적 있었어요. 중국사람들 사이에서. 왜 그렇게 썼느냐, 객관화 되지 않는데. 이해가 되는 게, 제가 다니던 UBC에는 벤츠, 페라리가 기본이었고. 되게 백인들은 그런 삶을 못 살잖아요. 그런 걸 느끼더라고요. 이해는 되지만 되게 안타까운? 녹아들지 못하고 갑자기 충돌이 확 되는. 갑작스럽게. 근데 캐나다는 지금 어느 거리를 가도 영어보다는 다국어가 들려요. 인도어도 들리고, 중국어, 필리핀어도 들리고. 영어가 안 들리는. 제가 아는 친구가 프로비던스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누나 너무 신기하다, 여기는 영어가 들린다 라고. (웃음) 제가 아, 무슨 말인지 알아. 라고 했던. (웃음) 그래서 저도 막 저한테 유학 상담을 하는 부모님들한테 제가 얘기를 해요. 밴쿠버보다 멀리 가라고. 더 후진 시골로 가셔야 영어가 들린다고. 아니면 섬으로 가시던가. 그런 쪽이 좋다고. 애들도 확실히 그런 쪽에서 살았던 애들이 다 free 하고, 엄청 athletic하고, 자연을 너무 좋아하고. 성격이 그렇게 자란 것 같아요.


Q. OO씨도 그런 것 같으세요?

저는 근데 너무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웃음) 그 반대에요. (그런 문화에 녹아들지는 않으셨어요?) 네. 아니었던 것 같아요. 밴쿠버는 그걸로도 유명해요. seasonal depression으로 유명해요. 기후가 겨울에는 내내 비가 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우울해져서 seasonal depression이 높고 atheist 제일 많은? 제가 옛날에 듣기로는 그게 있었던 것 같아요.


Q. 밴쿠버에 살았을 때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었어요?

저는 안 갔는데, 너무 멀어서 못 갔는데, 대학교 안에 살아서. 근데 있었죠. 


Q. 토론토는 완전 도시, 굉장히 사회적 융합이 잘 이루어져있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나 경험이나 이런 것들도 좋고. 

경험 중에 하나는, 몬트리올이랑 토론토가 좋았던 점이, historical buildings가 다 어울러져 있다? 그래서 어딜 가도 1600년도, 1800년도 막 그런, 내가 유산 안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몬트리올이 많이 그랬고, 토론토도 그렇고. 토론토는 되게 느리니까. (웃음) 모든 게 느려요. 버스도 안 오고. 다 느려요. (웃음) 너무 느려서. 특별한 경험? 거지들은 언제나 많고. 캐나다는 거지들이 참 많아요. 밴쿠버가 많고. 토론토도 많았어요. 지하철 타면 시비 거는 사람도 있고. 앉기가 꺼림칙해요. 거기는 근데 경험이 프리랜서 쪽으로 있어서, 좋은 경험 밖에는 기억이 없던 것 같아요. 뭔가, 한 street에 인도, 태국, 중국 음식점. 진짜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맛도 있고. 시애틀은 맛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되게 편했고. discrimination은 받은 적이 없고. 거지들 많았고. (웃음) 네. 특별히 없었던 것 같아요. 



Q. 대학에서 전공이 뭐예요? 

창작문예학과. 소설을 쓰고 제출하면 서로 critic을 해요. critic을 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게? 책을 읽으면 그거에 대한 테크닉을 말한다거나 그런 workshop. 주로 토론식이에요. (한국이랑 많이 다르네요. 한국은 대형 강의식, 100여명 학생과 교수님 한 분이서 하는. 물론 소규모 수업도 있지만, 학부에서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수업은 맥시멈이 13명. 토론해야 되기 때문에. 과 인원수도 매우 적고. 대학원에서는 fiction students가 5명밖에 없었어요. 1년에 fiction은 5명 뽑고 poetry도 5명 뽑고. 합하면 12명? (웃음) 


Q. 왜 그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됐어요?

일단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글을 좋아했어요 너무 좋아했어요. 글 쓰는 걸, 창작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아, 이 쪽 한 번 가보고 싶다 했는데 다행히도 문이 계속 열리더라고요. 포기하려고 하면 문이 계속 열리길래 일단 한 번 가보자. 


Q. 포기하려고 했는데 문이 열렸다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캐나다 밴쿠버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대학원을 지원하라는 교수님, 언니가, 하라고 그랬어요. 근데 저는 죽어도 싫다, 가능성도 없는데 왜 하냐. 근데 계속 교수님도 자꾸 권하시고 언니도 그래서 일단 지원을 했는데, 저는 다 짐을 싸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일을 하려고. 그냥 어느 회사 들어가서 하자 했는데, 거의 다 합격했어요. 브라운, 콜롬비아, 옥스퍼드는 웨이팅. 그래서 오라고 해서 가야 되겠구나 해서 갔죠. 날라갔죠. (웃음) 


Q. 대학원 졸업하고 작가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네. 계속. 


Q. 주로 어떤 글을 쓰세요?

이제는 주고 투고 계속 했던 건 단편소설이었고, 지금은 소설을 완고를 해서 다듬는 과정인데 다듬고 나면 뉴욕에 있는 퍼블리셔랑 에이전시에 연락을 해서 내 글이 괜찮으면, 그런 과정인 것 같아요. 


Q. 영어로 쓰시는 거죠? 한국에는 출판하실 생각 없으세요?

네. 영어로. 제가 글을 쓰는 건 초등학교 5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한글은. (웃음) 번역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죠. (웃음)


Q. 주로 작품을 쓸 때, 주제를 정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이미지를 많이 잡는 것 같아요. 갤러리를 많이 간다거나 그래서 프로비던스에 있었을 때 좋았던 점이 보스턴 뮤지엄이랑 가까웠거든요. 뉴욕에 있는 MoMA도 자주 갔었고. 그렇게 뮤지엄을 많이 찾아가거나 플리커나 이런. 한국에서도 플리커를 찾아보고. 한국은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 전시회를 가본 적이 없어요. 그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한국에는. 제가 모르는 것도 있는데. 그런 걸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많이 보려고 하는. 작품 같은 것.



Q.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라고 하는 건 특별히 소속이 없이 글을 써서 의뢰하고 이런 식이죠? 생활이 불안정하지는 않으셨어요?

다행이었던 건 대학원 때는 tuition fee랑 stipend를 받아서 다 해결해주셨고. 그리고 저축을 했죠. (웃음) 또 부모님한테 아무래도 기대는 게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래도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어서) 네. 그게 감사하죠. 정말.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웃음) 


Q. 프로비던스에 가게 된 건 대학원 합격하면서 가게 됐고. 거기는 어떤 곳인가요?

죽어가는 도시입니다. (웃음) 저도 처음에는 밴쿠버에 사는 영향도 있어서 그런지 도시를 싫어했어요. 사람 많고 북적거리고. 사람 많은 곳에 있으면 도망가고 싶은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시끄럽고 그런 거 싫어해요. 근데 프로비던스는 정말 도시를 그립게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웃음) 정말 죽어간다는 게, 거기 시청에서 일했던 친구 말로는 돈이 워낙 없어서, 문제들은 많은데 해결할 수는 없고. 그리고 거기 대표적인 학교가 있는데, 그 학생들로 먹고 사는 도시? 그 학생들이 수입을 내주는? 뭔가를 산다거나. IKEA에서 구입을 한다거나. 되게 웃긴 게, 보스턴 IKEA에서 구입을 하고 있는데 백인들이 그 얘기 하는 거예요. These kids are feeding us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욱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근데 그렇게 그랬던 것 같아요. 정말 가난한 도시, 그리고 치안이 너무 안 좋아서. 애들이 칼이나 총이나 위협도 많이 받았고. 프로비던스는 그랬던 것 같아요. 


Q. 학생들이 씀씀이가 크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게...

브라운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단 돈이 많은 학생들이어서 타겟팅을 많이 당해요. 들고 다니는 랩탑이나 그런 것들 팔 수 있으니까.


Q. 제가 최근에 프로비던스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전 세계를 떠돌아보면서 어느 도시 문화를 혼자 탐구하시는. 미국인인데, 그 분이 서울에도 사셨었거든요. 그 분이 요즘은 프로비던스에 꽂혀계신대요. 지금 살고 싶은 도시는 프로비던스라고 하더라고요. 역사적인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래요? 그러면 이해가 되네요. 혹시 어느 지역인지. (웃음) 브라운도 워낙 유래가 깊고 아무래도 도시가 보스턴도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라고 도로를 아예 냅뒀잖아요. 공사를 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두겠다고. 다 건물들이 낡았어요. 제가 머물렀던 집도 막 1900년대. 거의 다 그런 집 밖에 없어요. 새 건물이 없는. 


Q. 왜 그런 거예요? 돈이 없어서 그런가.

아예 지정한 집들도 있긴 해요. 보존하라는 집들도 있긴 한데, 제가 들었던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가 history department가 브라운대학교도 우리나라처럼 큰 건물을 세워놓은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집에서 그냥 department로 쓰는 거예요. 욕조 떼어내서 그냥 professor room처럼 한다거나. 어느 날 교수님이 일을 하시다가 위를 보다가 뭔가 이상했던 거예요. 천장이 무너지는데 책장이 막아준 거예요. (웃음) 다 그렇게 집들이 1800년대, 1900년대 오래 된. 아무래도 돈이 없는 것도 클 거예요. 눈사태가 나도 못 치우는 집들이 많아요. 돈이 없다 보니까. 


Q. 옛날부터 돈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누가 나한테 얘기해주긴 했는데 관심이 없어서. (웃음) 옛날에는 큰 상업도시였대요. 거기도 솔직히 지금도 큰 대기업 중에 하나가 있긴 있어요. 근데 법이 바뀌면서 다 빠져나갔대요. 상업에 불리한 법이 생기면서. 빠져나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활발했던 상업도시로 알려졌던 것 같아요. 


Q. 거기 사시면서 오래된 것, 역사적인 것 이런 것들은 좋아하는 편이세요?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그냥 historical site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늙은 도시? (웃음) 뭔가 찾아가서, 만약에 내가 아트갤러리를 가고 싶다 그러면 보스턴이나 뉴욕을 가야  하고. 그런 건 해결할 수는 없었어요. 낡은 분위기가 나고 도시 자체가 이제 그런 건 알겠는데, 그런 혜택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뭔가 보면서 느끼고 그런. 


Q. 사는 지역으로부터 영감을 받지는 않는 것 같네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되게 근데 글은 희한하게 잘 나왔어요. 프로비던스에서. 아무래도 우울한. (웃음) 저희 과에 텍사스에서 온 애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우울증 걸렸어요. 햇빛도 못 보고 갑갑하고 어디 놀고 싶거나 가려면 보스턴이나 뉴욕 가야 되고. 애들이 우울증 걸려서 저도 집에 짱 박혀서 글만 써가지고. 그래서 잘 나온 것 같아요. 애들이 다 똑같이 말하더라고요. 갑갑하다. 여기서 못 살겠다. 


Q. 날씨도 별로 안 좋은가 봐요.

네. 아무래도 동부이다 보니까. 눈보라랑 이런 게 많죠. 


Q. 프로비던스는 몇 년 있으신 거예요?

대학원은 2년이었는데 1년 더 있었어요. 교수님 옆에서 지도 받고 싶어서. 그냥 TA하면서 친했던 교수님 있어서 계속 이야기하고. 


Q. 교수님이 영향을 많이 주셨나 봐요?

네. 많이 주셨어요. mental soft? 그니까 정말 저를 믿어주고, 제 글을 믿어주고. 괜찮다, 시간문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이런 mental care를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런 멘토가 있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버텼던 것 같아요. 대학원 솔직히 많이 힘들었는데, 백인 우월주의 남자애 2명 있어가지고. 그런 애들 처음 봤어요. (웃음) 걔네들 텍사스에서 온 애들이었는데. 아무래도 과 특성 상 제가 유일한 동양인이고 유일한 색깔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discrimination 많이 받아요. 어쩔 수 없이. 그냥 과 특성 상. 아시아인이 아예 없어요. 그냥 다 백인. 그런 환경에서 절 믿어준 선생님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죠. 그 분도 백인이에요. 아르메니아인. 


Q. 외롭지는 않으셨어요?

많이 외로웠죠.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 과에서 유일한 흑인이었던 여자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졸업할 때 제가 들어왔는데 그 분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 진짜 많이 외로울거다, 여기서, 많이 외롭고 많이 괴로울 거니까 너 사람들을 찾아라 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African studies 가서 같은 흑인 사람들이랑 논대요. 과에서 애들이랑 놀지 않고 다른 department에 가서. 처음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했는데 좀 심각해져서. 거기는 한인교회가 딱 하나 밖에 없었던. 거기를 찾아가서 해소를 하려고 했죠. 외로움을. (힘드셨겠다. 그냥 대학원 다녀도 힘든데) 그쵸 그쵸. 버텼죠. (웃음) 



Q. 그러고 나서 다시 서울로 오신 거예요? 혹시 아예 들어오신 건가요?

아직 미정이에요. 근데 한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더라고요. 신기하게. 


Q. 다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제가 이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예전부터. 그거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volunteer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왔는데. 그런 마음으로 왔어요. 북한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Q. 갑자기 왜 북한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지?

제가 글을 쓱 된 이유가 할아버지 때문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실향민이셨어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게 된 목표가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제 삶 돌이켜보면 북한에 대한 일도 경험도 있고, 탈북민이나 북한에 갈 뻔한 적도 있고. 제가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가능하거든요. 천안함이 터져서 못 갔는데. 진심으로 갈 생각도 있었고, 탈북민들 인터뷰한 적도 있었고. 교수님들도 왜 안 쓰냐, 북한에 대해서. 저는 아무래도 아직까지 솔직히 좀 두려운 게 있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Q. 이제 그럼 들어온 지는 1년? 1년 동안 뭐 하셨어요?

신기하게도 한국 들어오자마자 직장을 사이드로 생각하고 있어서, 취직이 돼서 8개월 동안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이제는 그냥 글에 더 전념하려고. 그래서 창작활동은 거의 끝났어요.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Q. 무슨 일 하셨어요?

영어편집자. 맞지 않더라고요. 제 성격에. (웃음) 엄청 지루했어요. 눈도 나빠지고. (웃음) 폐인처럼 또 살다가 그만 두고 글이나 쓰고 싶다. (웃음) (오래 일했네요) 저축해서 한 4개월은 괜찮을 것 같아요. (웃음) 저랑 안 맞더라고요, 편집 일은. 글만 쓰자, 생각했죠. (웃음)


Q. 지금 어디에 사신다고 하셨죠? 그 지역으로 가게 된 계기는?

용산역이요. 회사랑 가깝고 교회랑도 가까워서. 


Q. 서울에 오시니까 어땠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된 건 사실이에요. 막 너무 빠르고 사람들 모든 게 눈치 봐야하고 뭔가 사람들하고 교류하는데도 좀, 한국 사람이랑 교류하는 건데도 아, 다르구나 라는 것도 느꼈고. 


Q. 어떤 점에서?

일단은 좋은 점도 있는데 나쁜 점 얘기하자면, 저는 제 평생을 캐나다에서 살면서 제 나이를 몰랐어요. 제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제 20대에, 누군가가 너 24살에 뭐 있었어 라고 물어보면 전 기억이 안 나요. 왜냐면 24살이라고 인지한 적이 없어요. 난 20대구나 라고 쭉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존댓말 때문에 나이를 물어보는데, 나이를 물어보는 것 까지 괜찮은데, 거기에 따르는 requirement? 그러면 결혼은? 애인 있어? 일은 왜 안 해? 그런? 그 나이대마다 social standards가 require하는 게 한국은 있구나, 내가 30대면 직장도 안정적이어야 하고, 연애도 해야 되고. 그게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뭐 밀어낼 수 없게 계속 침투하니까. 뭐 미디어에서도 그렇고 계속 침투하게 되니까, 저도 생각을 하게 되고 조바심이 나게 되는 것 같아요. (되게 안 좋은 문화인 것 같아요) 조금 그런 것 같아요. 되게 편하게 살았었는데, 괜히 어떡하지? 연애를 해야 된다고? 안 해도 되는 건데. 그리고 한국 분들 시간이 많이 걸린 다는 걸 느꼈어요. (시간이 많이 걸린다?) open up이 빨리 안 되는? 친해지는 데. (숫자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미국인과) 외국인과 친해지는 속도는 6에서 7정도라고 한다면 한국인은 3이나 4정도? 되게 천천히. 사람들은 closed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면 상처받은 거나 아니면 너무 바빠서 삶이.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Q. 그런 게 적응이 되셨어요?

적응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딱 그런 문제가 오면 아 맞다, 이런 게 있었지, 하면서 back down하고 받아들이는?


Q. 혹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토론토? 

네. 토론토. 


Q. 도시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그래도 토론토가 좋으신 거예요?

토론토가 그걸 깼어요. 도시를 좋아하게 만들었어요. (웃음)


Q. 토론토랑 서울을 비교하면 어때요? 사람들의 문화도 될 수 있고, 도시 구조나 규모라든가. 본인한테 특별히 의미가 있는 차이점. 

편안함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솔직히 마음 붙이기가 어려운 것도 있고, 뭔가 나만의 circle을 만들어야하는 느낌?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커뮤니티에 속해야 되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되고, 이런 게 있다면, 토론토에서는 자유분방하게 살고 눈치 안 보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편안함? 정신적인 편안함. (웃음) 계속 소유하게 만드는, 사람을? 꼭 소유하지 않아도 되고 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느냐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데, 그거를 계속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게. 뭔가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 느껴요. 그것도 옛날에는 내 정치적인 성향이나 다른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면 한국에서는 움츠리게 되고 눈치 보게 되는. 저 사람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나? 하는. 



Q. 지금 개인적인 관심사는?

제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빨리 뭔가 fruit를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픽 노블 그리고 있어요. 뉴욕에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친구랑 collaboration하고 있는 게 있어요. 만화 같은 건데, 뉴욕에 있는 온라인 매거진에 투고를 해보려고 제가 글을 쓰고 친구는 그림을 그려서. 뭔가 재밌는 것 같아요. 도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 


Q. 본인의 직업에 만족해요?

그렇긴 해요. 그렇긴 한데 인내심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옛날에 교수님이 책 한 권 쓰려면 책 한 권 출판하기 까지 10년이 걸린다고, 그 때는 에이 설마 라고 했는데. 정말 대학교부터 지금까지 9년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정말 뭐 자그마한 것들 출판하기는 했지만, 매거진에. 참 오래 걸리는 직업이구나. (장편이니까, 여러 권씩 쓰는 분들은) 그것도 재능인 것 같아요. 스티븐 킹 같은 분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뽑아내는 지. 기간 안에. 다작하신 분들 대단하죠. 


Q.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부모님은 늘 감사하게도 서포트를 잘 해주세요. 학생 때도 한 번도 성적표를 물어본 적이 없으셨어요. 냅뒀어요. 한 편으론 그게 불만이긴 했는데, 서포트 해주고 네가 노력만 하고 포기만 안 하면 서포트 해주겠다 하셨죠.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