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밀레니얼의 기원

Jina Kim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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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 어느 날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나라가 큰 빚을 져서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아버지의 직장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빚쟁이들이 찾아와 온 집에 빨간 딱지를 우악스럽게 붙이는 장면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우리 집도 그렇게 되는 것인지 되물었다. 그 질문에 어머니가 무어라 대답하셨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 둘.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조사했다. 그 조사결과(?)는 숫자로 정리돼 교실 벽에 게시되었다. 전교에서 아버지 직업이 ‘은행원’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중학생이었던 나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다. 고향인 부산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잘라 부산 앞바다에 버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YS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조롱이었다. 1998년 6월부터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98년 한 해 동안만 2만여 명의 은행원이 해고 중앙일보, “[IMF 1년] 3. ‘은행불사’ 사라진 신화”, 1998. 11. 11일자.

됐다고 한다. 은행을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았던 ‘은행불사(銀行不死)’의 신화는 그렇게 처참히 막을 내렸다.


이 우울한 시기에 10대 시절을 보낸 것은 생각보다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후로 ‘안정적인 삶’은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다. 주변에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행정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의 그런 선택을 혐오하면서도, 나 역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출사표를 던져보기도 했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겠다는 말에, 부모님을 포함한 친척 어른들이 모두 길길이 날뛰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셨다. 부모님 세대에게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공무원시험에 목매는 청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안타까운 시선들은 여전하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방법과 인식은 세대 간의 좁힐 수 없는 가치관 차이가 돼버린 걸까.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자영업 진입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마치 2030 청년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야심 찬 계획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창의적인 주체들인 양 해석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것은 통계적으로 단순화된 결과일 뿐, 좀 더 자세히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현실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창업률이 낮은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2018/2019 Global Report.

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우리나라 취업준비생의 절반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 YTN News, “취업준비생 절반 ‘공시족’ … 고용 불안 때문”, 2016. 7. 3일자.

하기도 했다. 정규직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 신입의 중도 퇴사율은 12%에 그치지만, 비정규직 중소기업에 입사한 경우에는 그 비율이 41%에 달한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대기업 취직은 더 이상 최고의 목표가 아니다’란 호기로운 평가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IMF 외환위기란 전란(戰亂)을 목격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안정적인 삶’은 여전히 최고의 목표로서 유효하다. 그 수단으로 창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특출난 사업수완을 가진 소수의 신화이거나, 어쩔 수 없는 내몰림의 결과일 뿐이다. 지금의 2030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것을 시작으로 집, 경력, 꿈과 희망,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N포세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마냥 포기한 것만도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을 하기보다, 지금 당장 현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경험에서 가치를 찾고 있다. 그것이 ‘소확행’, ‘가심비’ 같은 말들로 위시되는 밀레니얼의 문화다. 그렇다면 정말로 밀레니얼들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만으로 만족하는 것일까?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불확정성의 세계 속에서, 소박할지언정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가 아니었을까.


마케팅 업계는 밀레니얼을 가리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소비세대’라 칭송하고, 앞다투어 그들을 분석하며 일반화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의아해하고 때로는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뜨렸던 가혹한 현실과, 그 속에서 나름의 문화를 꽃피운 것이 바로 ‘요즘 것들’이다. 그런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갈 미래를 조금은 두려워하고, 조금은 걱정하며, 조금은 기대를 하는 것이 현대 도시사회에 필요한 소양이지 않을까.


참고.

중앙일보, “[IMF 1년] 3. ‘은행불사’ 사라진 신화”, 1998. 11. 11일자.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2018/2019 Global Report.

YTN News, “취업준비생 절반 ‘공시족’ … 고용 불안 때문”, 2016. 7.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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